메모리 품귀 속 '주문 취소 불가' 통보... 고객 관계에서 본 삼성과 TSMC의 경영 격차

최근 인공지능(AI) 수요 급증으로 메모리 가격이 폭등하며 극심한 품귀 현상인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 유명 반도체 산업 매체 《디지타임스(DIGITIMES)》에 따르면, 공급망 소식통은 한국의 메모리 대기업 삼성전자(Samsung Electronics)가 DDR4 사재기 현상을 틈타 서버 고객들에게 'NCNR(취소 및 변경 불가)' 계약 체결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는 생산 능력 조정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뉴스를 접한 첫 느낌은 과거 모두에게 익숙했던 그 '삼성전자'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침체기를 겪은 삼성전자가 이제 적극적인 태세 전환을 통해 본격적인 수익 창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공급망 및 유통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 내부의 전략적 사고에 변화가 감지된다. 생산 공급 조정의 최우선 순위를 '이익 극대화'에 두고, 메모리 사업의 업계 1위 탈환을 위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당초 2025년 말로 예정됐던 DDR4 일부 생산 라인의 가동 중단 계획을 연기하는 것이다. 시장의 공급 부족이 해소되지 않고 현물 가격이 고공 행진하자, 감산 속도를 늦추고 해당 물량을 서버 관련 고객들에게 NCNR 장기 공급 계약으로 제공하려는 것이다.
공급 조건은 '취소 및 변경 불가'... 삼성 고객사들,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
삼성전자가 이러한 판단을 내린 핵심 배경에는 AI 서버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 HBM) 경쟁력이 있다. 삼성은 최신 규격인 HBM3E 양산 경쟁력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SK Hynix) 및 마이크론(Micron)에 뒤처져 있으며, 원가 구조나 수익성 면에서도 DDR5, DDR4 등 범용 표준형 제품보다 열세다. 이에 따라 삼성은 하이엔드 중심축을 차세대 HBM4 경쟁으로 옮기는 한편, 기존 DDR4의 감산 속도를 조절해 일단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번 삼성전자의 DDR4 감산 완화 계획의 또 다른 포인트는 DDR4 수요가 확실히 강하고 프리미엄(웃돈)이 가장 높다는 점이다. 현재 고객사에 요구하는 DDR4 16Gb NCNR 장기 공급 가격은 20달러 선이지만, 현물 시장 가격은 이미 60달러를 넘보고 있다. 이처럼 높은 프리미엄을 놓치기 아깝다는 점이 삼성전자가 전략을 수정한 주된 요인이다.
삼성전자 고객사들의 반응에 따르면, NCNR은 '취소 불가, 반품 불가(Non-Cancellable, Non-Returnable)'를 의미하는 것으로, 고객을 묶어두는 일종의 불공정 계약이다. '취소 및 변경 불가' 조건은 삼성의 생산 조정을 통한 이익 극대화를 보장하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당연히 받아들이기 힘들고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계약이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볼 때 수급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메모리는 팬데믹 기간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급등했으나, 2023년 팬데믹이 잦아들자 가격이 급락했고 삼성의 그해 이익은 95%나 폭락했다. 현재의 가격 반등 역시 수급 불균형에 기인한다.
과거부터 메모리 산업은 명확한 경기 순환(사이클)을 보였다. 불황에는 적자를 보고, 호황에는 막대한 돈을 번다. 따라서 메모리 공급업체 입장에서는 불황기에 손실을 최소화하고, 경기가 회복되면 필사적으로 수익을 만회하려 한다. 이는 업계의 통상적인 생리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공급사의 이익 극대화 추구, 고객 관계의 긴장과 불신 초래
그러나 메모리 공급망 생태계에서 대형 제조사가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을 경우, 수많은 중하류 고객사들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며 일부는 도태될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현재 메모리 가격 급등은 AI에 사활을 걸고 투자하는 대형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loud Service Providers, CSP)들에게는 자금력이 있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일지 모른다. 하지만 PC, 스마트폰, 일반 범용 서버 등 소비재 전자 산업 업체들에게는 오히려 대재앙과 같다. 핵심 메모리 부품이 없으면 완제품을 출하할 수 없어 그 타격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슈퍼사이클이 예상되는 2026년을 앞두고, 다수의 스마트폰, PC, 혹은 중저가 및 비(非) AI 용도 서버 업계는 이미 출하량을 줄이거나 메모리 사양을 낮추는 등 재난 속 손실을 줄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공급사가 자사의 이익 극대화만 챙길 때, 고객은 당장 항의하지 못하더라도 양측 간에는 긴장과 불신이 형성된다. 그 결과 메모리 경기가 침체되어 공급사의 재고가 쌓일 때, 고객이 공급사와 고통을 분담하며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주문을 논의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원수를 갚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다, 가격을 바닥까지 깎아버리겠다"는 식의 보복 심리가 작용하며, 이러한 악순환은 메모리 산업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여기서 필자는 삼성전자와 TSMC 두 회사가 고객, 공급업체 및 이해관계자와의 생태계 경영에 있어 어떤 명확한 차이를 보이는지 논하고 싶다.
필자는 반도체 산업을 장기간 관찰해 온 평론가로서, 2012년 삼성전자에 관한 저서를 통해 삼성이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 어떻게 '역발상 투자 전략'으로 대만과 일본의 DRAM 및 패널 산업을 무너뜨렸는지 다룬 바 있다. 또한 2년 전에는 《칩 아일랜드의 빛: TSMC, 반도체 그리고 칩 워》(The Glory of the Chip Island)를 집필하며 TSMC(대만적체전로제조)가 어떻게 경영 관리하여 세계 1위에 올랐는지 심층 분석했다. 이 두 회사가 '생태계'를 대하는 태도는 정확히 상반된 전형을 보여주며, 이는 깊이 있게 다뤄볼 만한 주제다.
팬데믹 품귀 속에서도 고객 관계 중시한 TSMC, 대규모 인상 자제
먼저 삼성은 메모리 산업, TSMC는 로직 IC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의 업계 선두주자이지만, 생태계 경영 관리는 확연히 다르다.
파운드리 역시 경기 순환이 존재하지만, 표준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메모리만큼 직접적이고 뚜렷하지는 않다. 지난 팬데믹 당시 극심한 공급 부족 사태 속에서 파운드리 생산 능력은 턱없이 부족했고,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대만으로 몰려와 생산 할당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TSMC는 대대적인 가격 인상을 단행하지 않았다. 반면 2선 파운드리 업체들은 필사적으로 가격을 올리며 기회를 틈타 단기 수익을 챙겼다.
물론 팬데믹이 끝난 후 자동차 시장은 뚜렷한 조정기를 맞았다. 수요 감소뿐만 아니라 중국 전기차의 글로벌 시장 진출 공세에도 직면했다. 또한 PC, 스마트폰 산업 역시 하향 조정되었다. 당시 호황을 틈타 한몫 챙겼던 2선 파운드리 업체들은 반짝 수익을 올렸을 뿐, 그 이후는 지속되지 않았다.
생태계 관점에서 메모리와 파운드리 산업을 보면 그 차이는 확실하다. 주된 원인은 산업의 특성, 고객 관계, 공급망과의 거래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메모리는 고도로 '코모디티화(Commodity, 범용 상품화)'된 산업이다. 동일 세대의 DRAM은 각 사의 기능이 거의 같으며, 고객은 가격, 공급 안정성, 규격 충족 여부를 비교한다. 제품은 '만들어내기만 하면' 팔리기 때문에, 공정 기술이 성숙하면 즉시 가격 전쟁이 발생한다.
반면 파운드리의 로직 IC 공정은 모든 제품이 유일무이하며, 각 시스템반도체(System on a Chip, SoC)는 서로 다른 고도의 맞춤형 상품이다. 또한 파운드리는 고객과 공동으로 설계해야 하며, 수율은 제조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객과의 '설계 × 공정' 협업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메모리 업체의 학습 곡선은 대량 생산과 제품 통일에서 나오며, 천문학적인 R&D 자원과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만들어내기만 하면 표준 제품이기에 고객은 존재한다. 물론 판매가는 수급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팔리지 않을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표준화된 메모리의 고객 관계, 파운드리만큼 긴밀하지 않아
반면 파운드리의 학습 곡선은 생산 전부터 특정 고객과 협력하여 각종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경험은 매번 '테이프아웃(Tape-out, 설계 도면을 공장으로 넘기는 과정)'의 실패로부터 축적된다. 이러한 경험은 문서로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산 운영의 일상 속에서 발생하며, 고객과 장기적인 신뢰 및 공동 창조 관계를 구축해야만 달성할 수 있다.
이처럼 전혀 다른 산업 구조와 프로세스를 보면 파운드리 산업과 고객의 관계가 얼마나 긴밀한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TSMC는 애플(Apple), 엔비디아(NVIDIA) 등 고객사와 제품 설계 초기 단계부터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고객의 요구에 맞지 않는 제품을 만든다면 쓰레기를 생산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TSMC가 이를 다른 고객에게 넘길 수도 없다.
하지만 메모리 산업은 다르다. 일부 제품은 개발 전 고객 수요 이해가 필요하지만, 대부분 표준 제품이므로 A 고객이 원하지 않으면 B 고객이 가져가면 된다. 또한 경기 순환이 뚜렷하여 품귀 시에는 재고 걱정이 전혀 없다. 불황의 시련만 견뎌내면 경기가 회복될 때마다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따라서 산업 특성상 파운드리는 고객과의 연결이 더 단단하고 협력이 밀접하여 기본적으로 '상생(Win-Win)' 모델이다. 그러나 메모리 산업은 다르다. 공급사와 고객 관계가 비교적 소원하며, 때로는 한쪽은 비싸게 팔려 하고 다른 쪽은 싸게 사려 하는 등 서로의 이익이 상충하고 의심하는 관계다. 이것이 TSMC와 삼성전자의 확연히 다른 경영 이념과 운영 모델을 형성했다.
스마트폰·TV 등 완제품 사업 병행하는 삼성, 고객과 이익 상충 불가피
물론 필자가 언급한 것은 TSMC와 삼성전자의 기업 문화 차이를 관찰하는 하나의 각도일 뿐이다. 사실 삼성전자를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 같은 타 메모리 공급사와 비교할 때, 삼성전자가 자체 제품과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이익 상충을 야기하는 또 다른 관찰 포인트다.
예컨대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자체 하류(Downstream) 완제품이 없다. 따라서 고객과 이익 상충이 발생할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삼성은 자체 스마트폰, TV 등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메모리 공급업체이자 동시에 수요처이기도 하다. 메모리 품귀 시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이나 TV 경쟁사들에게 어떻게 물량을 공급할지, 예를 들어 애플 아이폰이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이익 상충의 시험대가 된다.
따라서, 다시 삼성전자가 서버 고객들에게 NCNR 계약을 요구하며 생산 조정을 통해 이익 극대화를 꾀한다는 뉴스로 돌아가 보자. 삼성에게 이 정책은 과거의 관행을 이어가는 것일 뿐이며, 경기 순환과 수익을 관리하는 표준 절차일 수 있다. 하지만 삼성과 거래하는 수많은 고객에게 이는 중대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조치다.
과거 메모리 산업을 지배해 온 삼성전자라면 예전 방식을 고수해도 무방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지난해 SK하이닉스가 이미 메모리 왕좌를 선점했고, 마이크론이 맹추격 중이며, 중국 경쟁사들도 빠르게 따라오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돈을 더 벌 것인가 덜 벌 것인가의 문제는 이제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생태계 내 다른 구성원들을 어떻게 이익 공유자로 바라볼 것인가. 이는 삼성전자에 매우 중대한 과제이며, 이 전자 거인의 미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