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는 중국을 택했고, 미국은 대만을 택했다"… 설 자리 잃어가는 한국 반도체

최근 글로벌 업계를 뒤흔든 두 가지 '빅딜' 소식이 있었다. 하나는 일본 소니(Sony)가 중국 TCL과 협력 의향서(MOU)를 체결하고, TCL이 51%, 소니가 49%를 출자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해 소니의 홈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넘긴다는 소식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 마이크론(Micron)에 관한 뉴스다. 마이크론은 18억 달러(약 2조 5천억 원)를 들여 대만 PSMC의 퉁뤄(Tongluo) 공장을 인수한 데 이어, TSMC 전 회장이자 현재 마이크론의 사외이사인 류더인(Mark Liu)이 최근 약 780만 달러(약 108억 원) 규모의 마이크론 주식을 매입했다.
이 두 가지 뉴스의 이면에는 간과해서는 안 될 중대한 함의가 숨어 있다. 특히 미·중 패권 경쟁과 한·일·대만 산업 지형의 격변 속에서, 산업 간 합종연횡의 구도가 미묘하지만 아주 명확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소니의 행보는 일본 산업계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SONY'는 일본인의 자존심이자, 2024년 닛케이 글로벌 브랜드 조사에서 삼성, 아디다스, 애플에 이어 아시아 4위를 차지할 만큼 여전히 강력한 가치를 지닌 브랜드다.
그런 소니가 TV와 홈 오디오를 포함한 주력 사업을 분사해 중국 기업인 TCL과 합작하고, 심지어 지분의 과반(51%)을 중국 측에 넘기며 경영 주도권을 내주었다. 이는 일본인들에게 심리적으로 적지 않은 충격일 것이다.
소니의 '선택과 집중', 삼성전자가 참고해야 할 모델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는 소니가 추진해 온 대대적인 구조조정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소니는 이미 영화, 음악, 게임 등 지식재산권(IP) 중심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비핵심 하드웨어 사업은 과감히 분리하거나 독립시킨다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확정한 상태다.
나는 작년 중순, 이러한 변화에 대해 기고한 적이 있다. 소니는 금융 사업(은행·보험)을 소니파이낸셜그룹으로 분할했고, 핵심인 반도체 사업(이미지센서 주력의 SSS) 역시 구체적 시기는 미정이지만 독립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후 한국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대학교수가 내게 물었다. "만약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난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삼성의 사업 구조는 너무 비대하고 복잡합니다. 반도체부터 스마트폰, 가전까지 모든 것을 수직 계열화해 안고 가다 보니, 부서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의사결정의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를 개선해야 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한국과 대만은 산업 생태계가 달라 TSMC 모델이 정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같은 거대 복합기업(Conglomerate)인 소니가 보여주는 과감한 사업 분할과 구조조정이야말로 삼성이 참고해야 할 훌륭한 타산지석(他山之石)입니다."
물론 현재 삼성에게서 사업 분할과 같은 혁신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AI 붐에 따른 메모리 및 파운드리 공급 부족 덕분에 삼성은 긴 불황과 적자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지금 삼성의 우선순위는 근본적인 개혁보다는, 호황을 틈타 **'현금 확보(Maximizing Cash Flow)'**와 실적 방어에 급급한 모습이다.
다시 소니 이야기로 돌아가자. 소니가 TCL에 지분 51%를 넘기며 주도권을 내준 것은, 복잡한 중·일 관계를 고려할 때 다소 파격적이지만, 철저히 실리를 따진 전략적 선택이다.
글로벌 TV 시장, 한국과 중국의 천하가 되다
글로벌 TV 시장은 이미 한국계와 중국계 브랜드의 독무대가 되었다. 트렌드포스(TrendForce)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TV 브랜드 상위 5개사는 삼성, 하이센스(Hisense), TCL, LG, 샤오미 순이다. 이들의 점유율 합계는 64.3%에 달하며, 특히 일본 시장 내 중국 브랜드 점유율은 사상 처음으로 50%를 돌파했다.
하이센스는 도시바(Toshiba)의 '레그자(Regza)' 브랜드를 인수한 뒤 일본 시장 1위(24.6%)로 올라섰고, TCL 역시 9.7%의 점유율로 소니와 파나소닉을 제치고 4위로 도약했다.
중국 브랜드의 약진, 그리고 중국과 손잡은 일본 레거시 브랜드의 부활. 이것이 소니가 TCL을 파트너로 선택한 시장 논리다. 소니는 일본 내 유통망 운영을 TCL에 이관하고 있다. 거대한 내수 시장과 압도적인 제조 규모를 갖춘 중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이제 대체 불가능한 수준이다.
따라서 반도체, AI, 방산 등 민감한 안보 기술 분야에서 미·중 진영이 명확히 갈리고, **중국 토종 공급망(이른바 '붉은 공급망')**과 비(非)중국 공급망이 분리되는 이 시점에, 소니가 가전 분야에서 중국 기업에 주도권을 넘긴 것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가장 현실적이고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또한 소니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소니가 삼성이나 LG를 택할 리 만무하다. 일본 대기업들은 정서적으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꺼릴 뿐더러, 과거 한국 기업과의 제휴에서 실익을 챙긴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반면 TCL은 안보 리스크나 정보 유출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다. 게다가 가격 경쟁이 치열한 TV 시장에서 제조는 TCL에 아웃소싱하고, 소니는 브랜드와 콘텐츠 관리에만 집중함으로써 저수익 구조인 제조 부문에서 손을 떼는 '에셋 라이트(Asset-light)' 전략을 완성할 수 있다. 이는 과거 IBM이 PC 사업을 레노버에 매각하고, 이후 NEC와 후지쯔도 결국 레노버에 사업을 넘긴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백형 전 NEC 대만 총괄대표는 "소니는 이러한 구조 개편 후에도 AI 시대의 핵심인 오디오와 이미징 기술은 강력하게 보유할 것"이라며 "세계 독점적 지위의 CIS(이미지센서) 기술을 바탕으로 소니와 브라비아의 브랜드 파워는 유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TSMC와 마이크론의 동맹, 그리고 류더인의 역할
성숙기 산업인 가전과 달리, 주가가 폭등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는 마이크론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마이크론은 18억 달러에 대만 PSMC 퉁뤄 공장을 인수해 HBM(고대역폭메모리) 후공정 능력을 확보하며 생산 병목을 해소했다.
마이크론은 지난 수년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한국의 거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대만 및 일본과 연합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이노테라, 렉스칩, 엘피다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연대항한(連台抗韓: 대만과 연합해 한국에 대항한다)'**의 구도를 만들었다. 현재 마이크론의 최대 생산 거점은 대만과 일본이며, PSMC 공장 인수로 대만과의 밀월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여기에 리스크 분산을 위해 마이크론 본사는 이틀 전, 미국 뉴욕주 클레이(Clay)에 1,000억 달러 규모의 메가 팹(Mega Fab) 착공을 선언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조업 리쇼어링' 정책에 화답하는 동시에, 미래 중국 메모리 굴기에 대비하는 '미국 국가대표'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것이다.
이로써 마이크론은 명실상부한 **'미·일·대만 반도체 삼각동맹'**의 구심점이 되었다.
주목할 점은 2024년 6월 TSMC 회장직에서 물러난 류더인이 2025년 3월 마이크론의 사외이사로 영입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마이크론과 TSMC의 결속을 알리는 결정적인 신호다.
류더인은 TSMC 재임 시절부터 마이크론과의 협력을 적극 추진했다. 그는 SK하이닉스와의 협력 외에도 마이크론의 HBM을 TSMC-엔비디아 AI 시스템의 주요 파트너로 편입시켰다. 또한 2021년에는 마이크론 대만 대표였던 쉬궈진(Albert Hsu)을 TSMC 부사장으로 영입해 패키징 조직(IIP)을 맡기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주 수요일(1/14), 마이크론 내부자 거래 공시를 통해 류더인 사외이사가 약 780만 달러 규모의 마이크론 자사주를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주도의 반도체 판짜기, '코리아 패싱'의 그림자
메모리 주가가 고공행진 중임에도 류더인이 과감하게 주식을 매입한 것은 업황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나는 류더인의 투자가 단순한 시세 차익을 넘어선 지정학적 로직을 담고 있다고 본다.
미국은 현재 메모리 산업에서 한국의 두 기업(삼성, SK하이닉스)이 가진 지배력을 낮추려 하고 있으며, 그 핵심 파트너로 대만을 선택했다.
최근의 흐름들, 즉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과 대중 협력 강화 움직임, 그리고 한·미 관세 협상 결과가 한국에 불리하게 돌아간 상황들은 미국이 반도체 패권의 핵심 축(Core Circle)에서 한국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지난 1월 초, 이재명 대통령은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회담을 갖고, '한한령(限韓令: 한류 금지령)' 해제를 요청하며 경제·문화 전반의 협력 심화를 천명했다.
이 대통령은 시 주석과 선물을 교환하고 샤오미 폰으로 '셀카'를 찍는 등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였을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냉혹한 국제 질서 속에 영원한 적도 동맹도 없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개척하는 국익 중심의 **'실리 외교(Pragmatic Diplomacy)'**에 달려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는 한국이 중국과 밀착하겠다는 신호를 명확히 한 것으로, 이는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의 주시 대상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대만과는 파격적인 관세 협정을 맺으면서도, 한국에는 가혹한 조건을 내밀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다.
결론은 명확하다. 가전과 같은 성숙 산업에서 중국 브랜드는 계속해서 세계를 제패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민감한 반도체 기술 패권 전쟁에서, 미국과 일본, 대만은 **'3각 동맹'**을 맺고 중국은 물론, 표류하는 한국과도 경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계 기술 패권의 대분열(Great Bifurcation) 속에서, 한국 반도체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 살벌한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