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CEO를 물려주지 않는다”: 어드밴텍(Advantech) 창업자 KC Liu의 승계 숙제, 그리고 대만 제조업의 과제

얼마 전 대만 이사학회(Taiwan Institute of Directors) 창립자 Allen Tsai(蔡鴻青)의 신간 『大交棒時代』(대승계 시대)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무대에는 어드밴텍(Advantech·研華) 회장 KC Liu(劉克振)와 민성(敏盛) 의료그룹 CEO Fred Yang(楊弘仁)이 나란히 앉았다. 한 사람은 물려주는 1세대, 한 사람은 물려받은 2세대. 기업 승계 과정에서 부딪히는 온갖 난관이 화제에 올랐고, 대단히 밀도 높은 대담이었다.
Liu 회장은 예순 살부터 승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2년간 국내외 관련 서적을 독파하고 수많은 강연과 토론에 참석했다. 오랜 연구 끝의 결론은 이렇다. 기업 승계는 전부 개별 케이스이며, 그대로 베낄 수 있는 이론은 없다. 회사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확고한 원칙 하나는 얻었다. 가족 승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분 구조 설계를 제대로 하는 일이다.
Liu 회장의 말이다. “사람이 돈에 대해 갖는 필요는 생각보다 훨씬 적다. 일정 수준을 넘어선 돈은 쓸모가 없다. 후손을 너무 부자로 만들어 매일 돈을 어떻게 다 쓸지만 궁리하게 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가족 승계의 첫걸음은 지분 설계를 단단히 해서 쉽게 팔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어드밴텍은 1983년 휴렛팩커드(HP) 엔지니어 출신인 劉克振(KC Liu)·黃育民·莊永順 세 사람이 창업했다. 다른 두 창업자는 이미 은퇴했거나 자기 사업을 꾸렸고, Liu 회장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 당사자이자 회장으로 남아 있다. 현재 어드밴텍의 시가총액은 약 4,700억 대만달러(약 20조 원)에 이른다. Liu 일가는 지금까지 주식을 판 적이 없고, 지분율은 약 25%, 지분 가치는 약 1,175억 대만달러(약 5조 원)다.
Liu 회장의 시선은 냉정하다. 가족 승계가 몇 세대를 거치면 가족 구성원은 반드시 주식을 팔게 되고, 지분은 자연히 흩어진다. 인간 본성에는 선도 악도 있지만 사람은 쟁탈로 기울기 마련이고, 동서고금에 경영권을 둘러싼 집안싸움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지분 설계와 승계가 중요하다. 현재 어드밴텍은 폐쇄형 회사(정관으로 주식 양도를 제한할 수 있는 대만의 회사 형태)를 통해 지분을 보유하며, 가족 지분이 쉽게 팔리지 않도록 잠가 두었다.
두 아들은 앞으로 CEO가 되지 않는다고 Liu 회장은 말한다. 어드밴텍은 이미 직원 9천 명의 회사다. 아들을 CEO에 앉히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며,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 한다. 두 아들은 현재 모두 어드밴텍에 재직하며 각각 인사 부문과 투자·재무 부문의 협리(부문 부책임자급)를 맡고 있다. 기능 부서이지 일선 사업부 책임자가 아니다. 앞으로 5년간 Liu 회장은 승계에 속도를 낸다. 올해 말 CEO 자리를 전문경영인에게 넘기고, 동시에 승계를 제도화해 향후 1~2년 안에 세부 사항을 확정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아들이 회장직은 물려받을까. Liu 회장 자신도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들이 둘인데 한 명에게 물려줄 것인가, 번갈아 맡길 것인가——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모든 회사는 개별 케이스”라고 말하는 것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같은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장비업체 즈성(志聖)공업 회장 梁茂生의 한마디다. 그는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아들이 하나뿐이라(현 즈성 사장 梁又文), 그 아이한테 주면 된다. 승계 결정이 훨씬 단순하다.”
Liu 회장은 해외 패밀리오피스도 다수 연구했는데, 성공한 승계는 모두 ’이타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오래가는 가문 다수가 이타와 자선 사업에 몸을 던진다. 어드밴텍의 승계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공익에 할애할 것이다. “그것이 후손에게 가장 큰 의미와 가장 큰 복이 된다.”
수많은 해외 사례 중 Liu 회장이 가장 참고할 만하다고 본 곳이 머크(Merck)와 에르메스(Hermès)다. 올해 그는 패밀리오피스를 정식 설립했다. 가족 투자회사가 어드밴텍을 지주 지배하는 구조다. 지금 Liu 일가 구성원은 아직 적지만 장래에는 수십 명, 백 명을 넘을 수도 있다. 정기적인 가족회의를 통해 이사를 선출하고 어드밴텍 이사회에 보내 감독과 거버넌스를 수행하게 한다.
패밀리오피스에는 내부 팀이 필요하지만 고도로 전문적인 기능을 전부 내재화할 수는 없어 외부 전문가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솔직하게 덧붙였다. 대만의 패밀리오피스 사정에 밝은 전문가는 많지 않다. 자신은 돈을 내고 전문 서비스를 사는 쪽이지만, 가족에게는 구독형으로 전문 서비스를 얻는 구조가 필요해질 것이라고.
Tsai 이사장이 책에서 든 기업 사례들——승계에 실패한 다퉁(大同)과 타이산(泰山), 저마다 특색 있는 모범생인 포모사플라스틱(台塑)·유니프레지던트(統一)·타이완시멘트(台泥)·델타전자(台達電) 등——에는 실패와 성공의 고유한 이유가 있다. Liu 회장은 농담 삼아 이 책은 몇 부 팔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이 정도 규모의 가족 승계 고민을 가진 독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공구서(레퍼런스)로 곁에 두고 필요할 때 펼치면 반드시 얻는 게 있을 거라고 권했다.
Liu 회장의 화법은 한결같이 직설적이지만, 경영에 대해서는 자기 체계를 갖고 있고 승계 설계까지 진지하게 연구하고 사고한다. 대만 전자업계에서는 드문 사례다. 국내외 제도를 연구하고, 숙고 끝의 경험담을 아낌없이 공유한다. 그 덕에 어드밴텍은 테크업계 가족 승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회사가 되었다. Tsai 이사장이 베스트셀러 한 권을 더 쓸 만한 소재다.
다만 출판기념회를 듣고 난 나는 작지 않은 충격을 안고 귀가했다. 그동안 인터뷰해 온 수많은 기업인을 돌이켜 보면, 사업의 성패와 무관하게 지금 많은 이들이 줄줄이 승계 국면에 있다. 그런대로 순조로운 경우도 있지만, 솔직히 엉망진창인 경우도 많다. 가족 승계를 제대로 해내는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학문이다.
그래서 Liu 회장이 든 두 사례, 머크와 에르메스다. 『大交棒時代』에도 소개되어 있다. 나는 직접 파고들고 싶어졌다. 머크 가문은 어떻게 350년 넘게 가업을 지키며 지금도 약 70%를 보유하는가. 에르메스 가문은 약 190년이 지난 지금도 어떻게 약 3분의 2를 쥐고 있는가. 대체 어떻게 한 것인가?
자료를 찾아보고 알게 됐다. 두 가문이 2~3백 년을 버티며 백 명이 넘는 상속인을 거치고도 지분을 흩뜨리지 않은 것은 운이 아니다. 정밀하게 설계된 제도의 묶음이며, 두 가문의 방식에는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첫 번째 열쇠: ‘주식합자회사’ 구조——소유와 지배의 분리
가장 핵심적인 한 수다. 두 가문은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법적 구조를 채택했다. 독일 머크는 KGaA(주식합자회사), 에르메스는 프랑스의 SCA(société en commandite par actions)다.
주식합자회사란 주식회사와 합자회사의 혼합체다. 회사 채무에 무한연대책임을 지는 사원 1인 이상과, 출자액을 한도로 책임지는 다수의 유한책임 주주로 구성된다. 대만 회사법에는 이 형태가 존재하지 않지만, 독일 등 유럽에서는 확립된 제도다.
이 구조의 묘미는 경영권을 ’무한책임사원(general partner)’이 쥐고, 그 자격이 가족에게만 유보된다는 데 있다. 에르메스의 경우 무한책임사원은 Émile Hermès SARL이며, 그 지분은 그룹에서 활동하는 직계 후손만 보유할 수 있다. 외부인이 공개시장에서 아무리 주식을 사 모아도 경영 지배권에는 손이 닿지 않는다.
머크의 구조도 비슷하다. 상장사 Merck KGaA의 약 30%가 시장에 유통되지만, 회사를 실제로 지배하는 것은 가족 합자회사 E. Merck KG다. 약 300명 규모의 가족이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의 약 70%와 지배권 전부를 쥔다.
2010년, 세계 최대 럭셔리 그룹 LVMH의 총수 베르나르 아르노가 파생상품을 동원해 에르메스 지분 약 17%를 기습 매집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LVMH는 결국 빈손으로 물러났다. SCA 구조가 ’주식은 살 수 있어도 회사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열쇠: 가족 지주회사와 장기 락업
LVMH 사건 이후 에르메스 가문은 2011년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주회사 H51을 설립했다. 가족 지분 과반을 그 안에 모아 잠그고 20년간 팔지 않기로 약정했으며, 가족 구성원이 주식을 팔려면 다른 구성원에게 우선매수권을 주도록 했다.
머크 가문 역시 주식은 원칙적으로 가족 내부에서만 이전된다고 정해 두어, 현금화하고 떠나기가 극히 어렵다. 이는 가족기업의 가장 흔한 몰락 경로——어느 한 집안이 현금화를 원하고, 지분이 밖으로 새고, 지배권이 야금야금 희석되는——에 대한 해답이다.
세 번째 열쇠: 재무 규율——외부 자본에 기대지 않는다
지분 희석의 가장 흔한 원인은 사실 증자다. 두 회사는 의도적으로 저부채·고유보·유기적 성장 모델을 지키며, 대형 인수합병을 거의 하지 않고 유상증자도 하지 않는다. 성장은 스스로 번 돈으로 굴린다. 에르메스는 초고마진에 현금이 넘쳐 애초에 자본시장에 손 벌릴 일이 없고, 머크는 글로벌 제약·화학 대기업이 되고도 보수적 레버리지를 유지한다. 남의 돈이 필요 없으면 지분을 내줄 일도 없다.
네 번째 열쇠: 가족 거버넌스의 제도화
두 가문 모두 정식 가족 헌장과 가족평의회를 두고 후계, 지분, 배당, 가족 구성원의 입사 조건을 규율한다. 머크 가문 구성원이 회사에서 일하려면 외부 전문경영인보다 더 엄격한 문턱을 넘어야 한다. 대다수 가족 구성원은 경영자가 아니라 주주로 남고, 경영은 전문 팀에 맡기며, 가족은 사원총회와 감사회를 통해 감독권을 행사한다.
에르메스는 핵심 요직에 가족을 남긴다——현 CEO와 아티스틱 디렉터는 모두 6세대다——그러나 마찬가지로 엄격한 내부 합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마지막으로, 한 겹의 문화적 결속
제도 바깥에서 두 가문은 가족 정체성을 의식적으로 가꿔 왔다. 회사 간판에 가문의 이름을 걸고, 후손은 어릴 때부터 자신을 ’소유자’가 아닌 ’수호자’로 배운다. 주식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책임이지 현금화할 자산이 아니다. 에르메스 가족 구성원들은 “회사는 손주들을 위해 맡아 두고 있는 것”이라 말하곤 하고, 머크 가문의 자기 정의 역시 “기업은 가족의 것이지만, 가족은 기업에 봉사한다”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법적 구조로 지배권을 잠그고, 지주회사로 지분을 잠그고, 재무 규율로 희석을 막고, 거버넌스 제도로 인간 본성을 관리하고, 문화적 정체성으로 합의를 묶는다——이 다섯 개의 자물쇠가 겹겹이 쌓여, 하나라도 빠지면 성립하지 않는다. 반면 실패한 승계들을 보면, 2~3세대까지 혈연과 정만으로 이어지다 이해가 충돌하는 순간 산산이 부서지는 가족기업이 적지 않다. 이런 제도적 자물쇠 없이는 확실히 어렵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들어가 묻자. 머크나 에르메스 같은 유럽 기업의 방식을, 대만 기업이 따라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대로 복제하는 것은 법제상 불가능하다. 대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대체 수단으로 비슷한 효과에 다가가는 것뿐인데, 자물쇠의 강도는 차원이 다르다.
왜 불가능한가. 대만 회사법에도 ‘양합공사(兩合公司)’(무한책임사원+유한책임사원)라는 형태는 있다. 그러나 독일 KGaA와는 전혀 다른 물건으로, 대만의 양합공사는 주식을 발행할 수 없고 당연히 상장도 못 하며, 실무에서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독일 KGaA의 정수는 ‘주식+합자’의 혼합에 있다. 회사는 상장해 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데도 경영권은 무한책임사원에게 유보된다. 대만 회사법에 이런 ’주식합자회사’ 형태는 없고, 상장하려면 주식회사 외길뿐이다.
그리고 주식회사가 일단 공개되면 ’1주 1의결권’의 틀에 갇힌다. 2018년 회사법 개정으로 복수의결권 주식과 특정 사안에 대한 거부권부 주식(황금주)의 발행이 허용됐지만, 대상은 비공개회사뿐이다. 공개·상장회사는 쓸 수 없다.
그러니 Google·Meta식 AB 듀얼클래스 구조도, 머크·에르메스식 ‘주식은 사도 경영권은 못 건드리는’ 설계도, 나아가 홍콩 상장 알리바바가 ’알리바바 파트너십’에 이사회 과반 지명권을 독점시킨 차등의결권(WVR) 구조도——대만 상장사에서는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다.
대만 가족들이 실무에서 쓰는 대체 수단
나는 AI에게도 물어보았다. KGaA라는 큰 자물쇠는 없어도 대만 가족기업은 몇 겹의 도구를 발전시켜 왔다. 첫째가 폐쇄형 주식회사를 가족 지주 플랫폼으로 쓰는 방법이다.
2015년 신설된 제도로, 머크 모델의 정신에 가장 가까운 도구다. 주주 50인 상한, 정관에 의한 주식 양도 제한(예: 가족에게만 양도 가능, 다른 주주의 우선매수권), 복수의결권·거부권부 주식 발행이 가능하다. 방법은 가족이 보유한 상장사 지분을 전부 하나의 폐쇄형 지주회사에 담아, 지분 잠금·의결권 집약·출입 규칙을 그 층위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개념적으로는 대만판 E. Merck KG 내지 H51이며, 최근 라간정밀(大立光·Largan Precision) 등 적지 않은 창업 가문이 이 구조로 움직이고 있다.
둘째는 재단법인의 주식 보유다. 고전적 사례가 포모사플라스틱그룹(台塑)으로, 창궁(長庚)의료재단이 그룹 핵심 4사의 대주주다. 재단 재산은 원칙적으로 분배도 임의 처분도 불가능해, 큰 지분 블록을 가족 영향권 안에 ’영구 동결’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최근 당국이 재단의 상장주 보유에 대한 거버넌스와 세제 혜택을 조이면서 이 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셋째는 투자회사 피라미드와 상호출자다. 가족이 다층 투자회사를 통해 지배력을 증폭시켜 자본 20-30%로 의결권 50% 이상을 쥔다. 대만에서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지만 약점은 역시 ’잠기지 않는다’는 것. 어느 집안이 팔기로 마음먹으면 법적으로 막을 수 없고, 협약에 기댈 뿐이다.
넷째는 의결권 구속계약과 주식신탁이다. 주주끼리 의결권 공동행사 협약을 맺거나 주식을 신탁에 맡겨 수탁자가 통일 행사하게 한다. 기업인수합병법과 회사법 개정을 거치며 이런 계약의 효력은 명확해졌다. 그러나 대만의 신탁은 세제(증여세·상속세 처리)에 묶여 있고 영미식 백년 가족신탁의 제도 기반도 없어, 통상 10~20년짜리 설계가 한계다. 에르메스 H51 같은 단단한 자물쇠는 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해외와 대만 가족이 쓸 수 있는 도구를 나란히 놓고 보면, 실무상 차이는 근본적이다.
머크·에르메스 모델은 ’법적 구조 자체가 지배권은 주식과 함께 움직이지 않음을 보장’한다. 외부인이 주식을 아무리 사도 소용없다. 반면 대만의 도구는 전부 ’가족 스스로 팔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폐쇄형 지주회사가 잠그는 것은 가족의 안쪽까지이고, 가족 ’전체’가 매각으로 설득당하는 것은 막지 못한다. 피라미드와 계약은 언제든 풀 수 있다. 결국 대만 가족의 지배권 방어선은 본질적으로 가족 화합과 지분율에 기대고 있으며, 어느 집안이 틀어지거나 현금화에 나서는 순간 다퉁·타이산·테코에서 벌어진 것 같은 경영권 대전이 터져 나온다.
그래서 최근 대만에서도 상장사에 듀얼클래스 구조를 열어 주자——최소한 홍콩거래소·싱가포르거래소가 혁신기업에 허용하는 WVR 수준으로——는 목소리가 학계와 실무계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당국은 소수주주 보호를 이유로 지금도 보수적이다. 규제가 풀리기 전까지 대만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폐쇄형 지주회사·신탁·가족 헌장이라는 수중의 도구를 겹겹이 쌓아 그 효과에 최대한 다가가는 것뿐이다.
다만 법제를 잠시 옆에 내려놓으면, 대만 기업의 가족 승계는 구미에 비해 아직 후발 주자이고, 구미 명문 가족기업의 관념과 방식이야말로 대만 가족에게 가장 결핍되어 있으며 가장 보완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대만 가족이 승계를 말할 때 관심의 9할은 ’누가 물려받나, 지분을 어떻게 나누나’에 쏠린다. 그런데 머크, 에르메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논리는 정반대다. 먼저 가족의 거버넌스와 가치 체계(가족 헌장·가족평의회·가족총회)를 세우고, 그다음에 기업 경영과 지분을 이야기한다.
또한 구미의 기업 가문은 ‘주주’와 ’경영자’의 역할을 완전히 분리한다. 대만 가족에게는 승계란 곧 회장직·CEO를 잇는 것이고 장남이 잇지 않으면 실패라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다. 그러나 머크 가문 약 300명 중 실제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그 입사 문턱은 외부 경영자보다 높다. 대다수의 역할은 ’책임 있는 주주(responsible owner)’——경영하지 않지만 감독할 줄 알고, 표를 던질 줄 알고, 사원총회에서 올바른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주주다.
모두 배울 만한 방식이며, 대만 기업이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이라고 나는 믿는다. 대만의 가족기업이 하루빨리 사고를 전환한다면, 그 가문이야말로 ’부자 삼대 못 간다’는 숙명에서 가장 먼저 벗어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