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임상 3상 데이터 목표 달성, 주가 한때 500 대만달러 돌파! 린바이오사이언스 린위신 회장, 어떻게 ‘시장 저평가’를 딛고 ‘영광의 순간’을 맞이했나?

린바이오사이언스의 공동 창업자 린위신(오른쪽)과 왕정치. (사진 제공: 린바이오사이언스)
대만의 신약 개발 기업 린바이오사이언스(Lin BioScience, 仁新醫藥, 종목코드: 6696)는 1일 저녁, 자회사 벨라이트 바이오(Belite Bio)의 신약 ‘LBS-008’이 스타가르트병(Stargardt disease) 청소년 환자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임상 3상 시험에서 주요 평가지표의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곧 ‘성공적인 탑라인 데이터(Top-line Data) 확보’를 의미한다.
최근 바이오 신약 업계에 굵직한 소식이 뜸했던 가운데, 오랜 침묵을 깨고 들려온 임상 성공이라는 대형 호재다. 벨라이트 바이오는 미국 나스닥(Nasdaq)에 상장된 신약 개발사로, 린바이오사이언스가 48.43%의 지분을 보유한 핵심 자회사다.
벨라이트의 이번 임상 성공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전 세계 임상 3상에서 스타가르트병에 대한 유효성을 입증한 최초의 약물이라는 점이다. 스타가르트병은 청소년의 중심 시력을 점차 잃게 만드는 희귀 유전성 망막 질환으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승인된 치료제가 전무하다.

현재 미국 내 스타가르트병 환자는 5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며, 전 세계적으로는 더 많다. 벨라이트 바이오는 2026년 상반기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 허가 신청(NDA)을 제출할 예정이며, 이에 따른 시장의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신약 개발의 긴 여정, 상장 초기 시장의 냉혹한 평가
린바이오사이언스는 2016년에 설립되었다. 창업자 린위신(Dr. Lin Yu-hsin) 박사는 시드니대학교 의학 박사 출신으로 컬럼비아대학교와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 MBA를 취득했으며, 자회사 벨라이트 바이오의 설립자이자 그룹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공동 창업자인 왕정치(Dr. Irene Wang) 박사는 현재 린바이오사이언스의 사장 겸 최고연구개발책임자(CSO)를 맡고 있다. 그녀는 국립대만대학교 생화학 박사 및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MBA 출신으로,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Scripps Research)의 박사후 연구원을 지낸 바 있다.
린바이오사이언스 설립 이후, 필자는 린 박사와 왕 박사를 여러 차례 인터뷰하며 기업 경영 철학,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은 수많은 시련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도전의 주된 원인은 신약 개발의 긴 호흡에 있었다. 린 회장은 린바이오사이언스가 대만 흥규시장(Emerging Stock Board)에 상장된 직후를 회상하며, “초기에는 회사의 진정한 가치가 시장에서 발견되지 못했고, 외부의 회의적인 시선과 도전에 직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2022년 그가 주도하여 벨라이트 바이오를 미국 증시에 상장시키자, 미국 투자자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단숨에 시가총액 10억 달러가 넘는 유니콘 기업으로 도약했다.
또한 왕정치 사장 역시 수차례 언론이 선정한 ‘베스트 CEO’에 이름을 올렸으며, 존슨앤드존슨(J&J) 산하의 인큐베이터 JLABS가 선정한 ‘걸출한 여성 리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초기의 저평가와 시련을 딛고, 약 10년의 세월 끝에 핵심 임상 데이터를 확보함으로써 그들의 노력은 드디어 시장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는 ‘10년 동안 칼을 간다(十年磨一劍)’는 신약 업계의 고난 어린 여정에 또 하나의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를 더한 셈이다.
노벨상 수상자 배리 마셜 교수의 신념, 창업 정신의 뿌리가 되다
7년 전, 필자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린위신 박사와 린바이오사이언스의 황셴룽 부처장을 초청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그들이 했던 이야기를 되짚어보면, 현재의 성과는 당시 그들이 계획했던 목표와 방향 그대로 실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필자는 린 박사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호주 유학파 창업가는 대만 바이오 업계에서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는 6세 때 해외로 떠나 남아공을 거쳐 17세에 호주 시드니대 의대에 진학했고, 졸업 후 신경내과 박사 과정을 밟았다. 운 좋게도 신경과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들 밑에서 수학할 수 있었는데, 지도 교수들이 다국적 제약사의 자문을 맡거나 신약 개발을 돕고 있었기에 린 박사 역시 일찍부터 신약 개발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린 박사는 멘토 중 한 명이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배리 마셜(Barry Marshall) 교수였다고 언급했다. 마셜 교수는 린 박사가 대학에서 수련받을 당시 방문 교수로 있었으며, 노벨상 수상 과정을 공유해주었다고 한다.
마셜 교수의 이론은 “위궤양은 세균(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었지만, 당시 주류 의학계의 인식은 전혀 달랐다. 위궤양은 위산 과다나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기존 관념과 달랐던 탓에 그는 배척당했고, 연구비조차 지원받지 못해 이론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마셜 교수의 연구 과정은 험난했다. 집을 담보로 연구비를 마련했고, 급기야 스스로 피험자가 되어 세균을 들이마셨다. 그 결과 실제로 위궤양에 걸렸고, 이후 항생제로 완치하며 자신의 가설을 입증했다.
약 30년 후, 의학계는 그의 이론을 인정했고 그는 노벨상을 받았다. 도전과 의심 속에서도 자신의 의학적 이론을 끝까지 믿었고, 행동으로 그 신념을 증명해 낸 것이다.
린 박사는 30년 전 위궤양이 치료법 없는 질병이자 공중보건의 난제였으나 마셜 교수에 의해 돌파구가 마련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정신’은 린 박사가 린바이오사이언스를 창업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가 되었다. 그는 현재 치료법이 없는 질병에 도전하여 의료 체계에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따라서 린 박사가 도전하고자 했던 것은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은 질병이었고, 그중 하나가 건성 황반변성이었다. 황반변성은 안과 질환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신경 위축 질환이기에, 신경과 및 심장과 박사 학위를 가진 그에게는 매우 익숙한 메커니즘이었다.

컬럼비아대학교로부터의 라이선스 확보, 완전히 새로운 임상 전략 제시
당시 필자는 그에게 “어떻게 컬럼비아대학교로부터 약물 라이선스를 확보했는가?”라고 물었다. 린 박사의 대답은 흥미로웠다. 아주 특별한 인연이었다는 것이다.
린 박사는 당시 컬럼비아대 비즈니스 스쿨에 재학 중 우연히 이 기술을 알게 되었고, 연구팀에 메일을 보내 라이선스 의향을 밝혔다. 동문이라는 관계 덕분인지 상대방은 기꺼이 그의 생각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미국 대학은 혁신과 창업을 적극 장려하며, 교수와 학생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창업하는 것을 권장하는 문화가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린 박사는 이 기술을 아시아로 가져와 개발하고 싶다고 전했다. 곧이어 “당신의 생각을 더 듣고 싶다”는 답장이 왔고, 면담이 잡혔다. 면담장에는 발명자인 교수를 포함해 6~7명의 위원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기술과 임상 개발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린 박사는 자신의 신경과 배경을 공유하며, 이 질병의 병리가 자신에게 익숙한 심혈관 기전과 매우 유사하므로 치료 전략에 확신이 있다고 설명했다. 발명자 교수는 이 말을 듣고 흥분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이 약을 개발할 때의 초심이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린 박사는 이 약이 노인성 황반변성뿐만 아니라 청소년 황반변성(스타가르트병) 치료에도 큰 잠재력이 있음을 제시했다. 두 질환 모두 비타민A 대사산물의 축적과 관련이 있지만, 청소년형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독성 침전물이 쌓여 신경세포 위축을 가속화시키며, 환자들은 보통 18세 이전에 심각한 시력 손상을 입는다.
린 박사는 “이 아이들은 앞길이 창창한데 병 때문에 인생이 가로막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자 수는 적지만 미국 FDA가 이 약물의 시급성을 인정할 것이며, 가속 승인(Accelerated Approval) 제도를 통해 유효성이 입증되면 조기 출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가 이 구체적인 규제 전략을 제시하자 교수와 팀은 열광했다. 린 박사가 약물 출시를 앞당길 수 있는 새로운 개발 각도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7년 전의 전략적 청사진, 이제는 현실이 되다
당시 자금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린 박사의 대답은 솔직했다. “맞습니다. 이 산업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비즈니스 스쿨에서 자금 조달, 투자, IPO에 대해 익혔던 그는 이미 투자자가 확보되어 있고, 임상 2상까지 개발할 수 있는 2천만 달러의 자금이 준비되어 있다고 답했다.
또한 임상 2상 후 유효성이 입증되면 글로벌 제약사에 라이선스 아웃(기술 수출)을 하거나, 가속 승인 제도를 활용해 조기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필자는 인터뷰 당시 린 박사에게 물었었다. “그래서 협상하러 갔을 때, 정말 돈이 준비되어 있었습니까?”
린 박사는 답했다. “네, 당시 이미 투자자가 확정되어 있었고 회사도 설립된 상태였습니다. 수많은 약물을 스크리닝했지만, 컬럼비아대의 이 약물이 우리 팀이 가장 확신하는 후보였습니다.”
이러한 답변에 만족한 컬럼비아대 팀은 상세한 사업계획서를 요청했고, 제출 2주 후 선정위원회 투표를 통해 린바이오사이언스에 라이선스를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린 박사는 라이선스를 획득했고, 대만으로 돌아와 린바이오사이언스를 창업한 10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7년이 지난 지금, 린 박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7년 전 우리가 그렸던 전략적 청사진이 이제 한 단계씩 정확하게 실현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동으로 그 약속을 증명해 냈습니다.”
당시의 인터뷰를 회상하며 오늘의 임상 성공을 지켜볼 때, 이 창업가는 한결같은 길을 걸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린바이오사이언스 팀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대만 바이오 신약 산업에 또 하나의 성공적인 글로벌 사례를 남긴 것이다.
오랜 기간 험난한 도전을 겪어온 신약 개발 산업에 있어, 이는 분명 가슴 벅찬 이정표와도 같은 순간이다.



